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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시리 살리려고 구글에 매년 10억 달러 지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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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시리 살리려고 구글에 매년 10억 달러 지불 중

10억 달러짜리 자인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 경쟁사에게 연간 10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제대로 된 AI 어시스턴트를 만들 수 없어서. 이것이 바로 2026년 1월 발표된 애플과 구글의 딜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시리 대개편에 구글의 제미나이 모델을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새로운 시리는 애플 내부적으로 "Apple Foundation Model 버전 10"이라 불리는데, 실체는 1.2조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제미나이 커스텀 빌드를 애플 브랜드로 감싼 것이다. 사용자에게는 구글 로고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딜은 애플과 구글의 전통적인 재정 관계를 완전히 뒤집었다. 수년간 구글은 사파리의 기본 검색엔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플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해왔다. 이제는 애플이 수표를 써주는 입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리가 수년간 AI 농담의 단골 소재가 된 끝에, 애플은 OpenAI, 구글, Anthropic을 독자적으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계속 쌓이는 지연

문제는 구글의 도움을 받고도 새 시리의 일정이 계속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2월 11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내부 테스트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다. 원래 iOS 26.4(3월 업데이트)에 포함될 예정이던 기능들이 iOS 26.5(5월)로, 어쩌면 iOS 27(9월)까지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2월 17일 iOS 26.4 베타를 공개했을 때, 새로운 시리 기능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사실상 지연을 확인해준 셈이다.

애플의 수석 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1세대 아키텍처로 시리를 재구축하려던 첫 시도가 "너무 제한적이었다"고 인정했고, "시리가 애플의 높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업식 표현을 빼면, 그냥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세대 LLM 기반 아키텍처로의 전환이 구글 파트너십과 일정 지연 모두를 설명해준다.

지연은 새 시리에 의존하는 4개의 신규 하드웨어 제품에도 위협이 된다. 스마트홈 허브, 스마트 도어벨, AR 안경, 그리고 새로운 Apple TV가 그것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AI 어시스턴트 없이는 이 제품들의 매력이 크게 떨어진다.

3월 4일 이벤트: 답보다 많은 질문

애플은 3월 4일 "특별한 애플 체험"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뉴욕, 런던, 상하이 3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한다. 미국 동부시간 오전 9시 시작이다. 이 이벤트에서는 iPhone 17e, 합리적 가격의 MacBook, M4 iPad Air 등 새로운 하드웨어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시리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새 AI 어시스턴트를 데모할 것인가? 하드웨어 이벤트로 AI 지연에서 시선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제한적인 시리 개선사항만 보여주면서 완전한 개편은 나중에 하겠다고 기대치를 조절할 것인가? 멀티시티 포맷은 애플이 큰 임팩트를 주고 싶어한다는 뜻이지만, AI 이야기의 실질적 내용이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프라이버시의 역설

애플은 프라이버시를 브랜드의 핵심으로 삼아왔고, 제미나이 딜은 여기에 불편한 긴장감을 만든다. 팀 쿡은 새 시리가 "온디바이스 및 Private Cloud Compute"에서 구동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Private Cloud Compute는 애플 실리콘 서버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제3자에게 데이터를 노출하지 않고 처리하도록 설계됐다. 데이터가 구글 인프라에 닿기 전에 익명화되고, 아무것도 저장되거나 모델 학습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게 애플의 설명이다.

그런데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같은 파트너십에 대해 구글을 애플의 "선호 클라우드 공급자"라고 표현했다. 이건 데이터가 구글 서버로 간다는 말처럼 들린다. 두 CEO의 모순된 발언은 아직 해명되지 않았고, 프라이버시 옹호자들은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다. 고급 시리 기능이 성능을 위해 Private Cloud Compute를 우회하고 구글의 TPU 하드웨어에서 직접 실행되어야 한다면, 애플의 핵심 프라이버시 약속은 공허해지기 시작한다.

경쟁사들의 시선

이번 딜은 파운데이션 모델 시장에서 구글의 위치를 확인해주는 동시에, OpenAI와 Anthropic에게는 타격이다. 두 회사 모두 파트너십 후보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 계약을 "불합리한 권력 집중"이라 불렀지만, xAI를 통한 그의 AI 야망을 고려하면 순수한 우려라고 보기는 어렵다.

업계 차원에서 보면 시사점이 크다. 시가총액 3조 달러에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링 인력을 보유한 애플조차, 구글, OpenAI, Anthropic이 만드는 수준의 프런티어 AI 모델을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AI 모델 개발 역량이 얼마나 소수에게 집중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애플도 혼자서는 못한다면, 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다.

전략적 베팅

애플 옹호론자들은 이것이 전형적인 애플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기술을 발명하지 않고, 통합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최초의 MP3 플레이어도, 스마트폰도, 태블릿도 만들지 않았지만, 사용자 경험에 집중해 각각의 최고 버전을 만들어냈다. 제미나이를 화이트 라벨링하고 애플의 프라이버시 아키텍처와 생태계 통합으로 감싸면, 구글이 직접 제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제품이 나올 것이라는 논리다.

회의론자들은 다르게 본다. 핵심 기능을 위해 경쟁사에게 연간 10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애플을 기술 리더가 아닌 유통 레이어로 만든다는 것이다. AI 어시스턴트의 핵심이 남의 모델이라면, 경쟁 해자는 하드웨어 디자인과 생태계 잠금에만 의존하게 된다. 게다가 새 시리가 반복적으로 지연되고 있으니, 통합 스토리마저 아직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앞으로 주목할 것

당장은 3월 4일이 관건이다. 애플이 새 시리를 실제로 데모하는지, 아니면 하드웨어 발표에만 집중하는지를 지켜보자. iOS 26.5 베타 주기(4월 예상)에서 지연된 시리 기능이 실제로 준비됐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프라이버시 이슈도 눈여겨봐야 한다. 애플의 PCC와 구글 인프라 사이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흐르는지 세부사항이 밝혀지면, "프라이버시 우선 AI"라는 내러티브가 유지될지 무너질지 판가름 날 것이다. 전 세계 25억 애플 기기 사용자에게,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참고자료

  1. Apple's Siri Revamp Reportedly Delayed... Again - TechCrunch
  2. Apple Picks Google's Gemini to Run AI-Powered Siri - CNBC
  3. Apple Appears to Be Sitting Out the AI Arms Race - CNBC
  4. Apple and Google CEOs Offer Conflicting Details About AI Partnership - WinBuzzer
  5. New Siri Runs Into Problems, Features Pushed to iOS 26.5 - MacRum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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